Prologue. ‘주거탈출넘버원’,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

다니는 대학 뒤편엔 골목이 있다. 골목마다 집이 있고, 집마다 문 앞에 붙은 전단이 요란하다.

‘하숙생 구함 xxx- xxxx’

‘잠만 잘 분 xxx-xxxx

사진 = 미스핏츠 / 서울시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근처의 자취촌 풍경

이리저리 뜯긴 전단 사이로 친구들이 나온다. 이 곳이 그들이 사는 ‘청춘의 집’이다.

친구 K는 너무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서울의 자취집은 집이 아니라며, 어느 날 불쑥 고향집으로 내려가버리곤 했다. 그러다 또 생기를 좀 찾은 모양으로 학교를 다녔다. 기숙사는 언감생심, 12:1의 경쟁률에 나가떨어졌다. 학기마다 지낼 방을 찾아나섰다. 멀쩡한 방은 50만원. 잠만 잘 방은 25만원. 5만원이 깎여나갈 때마다 그녀가 포기해야하는 건 돈이 아니었다. 5만원의 햇살. 5만원의 사생활. 5만원의 따뜻한 한 끼 밥.

월세도 비싼데 뭘 보증해야한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항상 보증금이 필요하댔다. 그녀는 월세를 꼬박꼬박 내겠다는 ‘보증’으로 10달치의 자기 노동을 헌납했다. 그렇게 구한 방은 가끔은 주방이 있었고 가끔은 없었다. 편의점에서 대충 한 끼 때울 요량으로 식사를 하고 대충 한 학기 먹고 잘 방을 구하고. 1회용으로 이어나가는 현재의 삶이 때로 버거웠지만, 누구에게 그런 설움을 터놓으랴. 청춘은 원래 그런 거라 했고 ‘네 문제는 네가 해결해야지.’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다. 그녀는 입을 닫았다.

응답하라 1994엔 우정도 사랑도 눈물도 있는데, 요즘 하숙집엔 그런 거 없다. 칸칸이 나뉜 방은 고시원이랑 흡사하다. 저녁 밥상에 반찬이 꼬박꼬박 올라온다는 거 하나만 다르다. 복도에서 신발을 벗고 자기 방 안으로 들어간다. 옆 방 사는 놈이 섹스 하는 소리도 다 듣고 살지만, 서로 인사 한 마디 안 건네고 들어간다. 노트북 켜두고 무한도전 보면서 컵라면을 먹는다. 공용 냉장고엔 반찬통마다 누가 훔쳐갈까 눈치 보는 포스트잇이 붙어있다. 집값은 비싸고, 다닥다닥 붙여서 개조한 각방들은 그나마 싸다. 주인은 돈을 더 번다. 5만원,10만원 월세를 깎으면 딱 그만큼의 공동체, 딱 그만큼의 자유를 잃는다. 이게 우리의 청춘의 집이다.

청춘의 집, 청춘의 ‘덫’

한국 청춘들에게 집은 ‘덫’에 가깝다. 높은 주거비가 미래를 발목 잡는다. 한국 최고 부자는 부동산 부자란 말이 있다. 이 집값 거품 속에서 돈 없고 집 없는 청춘들이 허덕인다. 사회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다. 기숙사를 더 짓겠다 하면 임대업자들이 피켓을 들고 학교 앞으로 몰려온다. 부동산 거품 위에 생계를 맡겨둔 사람들이다.

그 심정, 아예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야속하다. “원룸은 보통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5만원, 50만원 짜리가 제일 많”다고 말하는 그 하숙집 아지매,아저씨들은 아마 모른다. 알바 시급 꼴랑 오천원으로 땜하기 어려운 빚이 청춘에게 와르르 쏟아진다는 것. 보증금 천. 월세 사십오. 학자금 대출 천 사백만원. 부모님 등골도 빼보고 알량한 알바 월급도 털어보지만 그래도 안 된다. 그래서 창문 없는 방으로, 위험한 골목으로, 옆 방 사람이 미워지는 집에 우리가 제 발로 들어간다.

아무도 우울하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도 힘들다고, 죽겠다고 외치지 않았다. 다 그냥 살았다. 다들 그냥 사니까. 다만 조금씩 더 위험하게 살고, 이웃이 내는 소리가 역겨운 게 당연하고, 숨죽이는데 익숙해질 뿐. 혼자인 게 편하고,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날이 이어질 뿐. 삶은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닳아가는 것이다.

세 명 중 한 명의 청년이 주거빈곤층이다. 부모님 집에 사는 게 아니면 이 정도 서러움은 셀프로 견뎌야. (그림= 미스핏츠)

대학 와서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다는 친구. 꿈을 위해 서울로 와서 고시원에 들어간 언니. 싼 집 찾아 대학가 뒷골목을 다 돌았다는 그 오빠. 어느 날 문득 뒤돌아보니, 모두가 발목에 족쇄 하나씩 있다더라. 열심히 달리다가도 발목이 아프다. 왜 이 모든 빚이 ‘열심히 산 대가’가 되는 걸까?

누구는 2030세대를 ‘삼포세대’라고 말했다. 연애, 결혼, 출산을 모두 포기했다는 거다. 포기. 그치만 사실, 연애나 결혼이나 다 ‘사치’라면서 기피하는 친구도 마음 속에 이상형 하나쯤 다 그려놓고 산다. 삶의 당연한 행복을 사치로 안 빼두고, 잘 살고 싶은 마음, 누구나 다 똑같다. 잘 살기 전에 일단 ‘살아야 되니까’ 다 뒤로 제껴둔 것뿐. 어깨 위에 많은 빚을 얹어두었다. 이 빚에 우리가 사는 집만 쪼그라들면 또 모르겠는데, 마음도, 여유도 쪼그라든다. 이 한 몸 뉘일 방 구해서 사는 것도 이렇게 쉽지 않은데, 둘이 살고 셋이 산다니 엄두가 날 리 없다.

‘청춘의 집’엔 사랑도, 자유도, 미래도 없는 주제에 비싸기는 더럽게 비싸서 우리 미래를 빚더미 위에 앉혀놔도 모자랄 판이다. 청춘의 집이 아니라 청춘의 ‘덫’이다.

사람들은 청춘을 미화한다. 나도 내가 젊어서 좋긴 한데, 남들 상상만큼 좋은지는 모르겠다. 땀 흘리고, 주변 사람들과 얽혀 인생의 쓴 맛 단 맛을 같이 본다거나, 예쁜 시절에 사랑을 하고, 꿈을 꾸고, 힘을 내고. 청춘이란 단어랑 너무 잘 어울리는 이 이미지들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삶을 찬찬히 따라가본다. 손끝으로 더듬듯 한 마디, 한 마디. 아침에 눈을 뜨고 다시 잠 드는 곳. 우리가 살고 사랑하고 다시 힘내 내일을 준비했어야 할 곳. ‘청춘의 집’. 그런 곳이 있을 수 있을까?

모르겠으니까, 저희가 한 번 찾아보려구요.

어떻게 찾을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