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집> 2. 방을 찾는 후배에게 보내는 편지

저기, 우리의 휴지남 정그래가 보이는군요. 반.드.시. 소리를 켜고 들을 것을 권장합니다.

새끼야, 나다.

네가 기숙사에 떨어져 방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ㅉㅉ 불쌍한 놈. 나도 너처럼 집이 서울에선 KTX 타고 가야 하는 곳이라, 2학년 때까지는 기숙사에 살았다. 그런데 군대 가서 좆뺑이 치고  왔더니 3학년은 기숙사 TO가 반토막이라더라. 그래서 올해 초부터는 이 선배께서 자취를 하고 계시다.

내 경험상 무조건 기숙사가 자취보다는 낫다. 하지만 떨어졌으면 어쩔 수 없지. 정 그렇다면, 일단 학교 선배이자 자취 선배인 나의 썰부터 잘 들어봐라. 너의 삽질을 미연에 방지해 주려는 주옥 같은 말씀이니 잘 쳐 듣고 비싼 밥으로 보은하도록. 여튼 절대 내가 사는 이 집은 추천하지 않는다는 것만 알아둬라.

내가 사는 곳에는 복도 끝에 현관문이 있어. 거기서 신발을 챱챱 벗어서 대충 던..지면 아줌마한테 혼남.

알다시피 우리 학교 주변엔 독특한 원룸들이 많다. 고시원보다는 넓은 거. 한 층에 여러 원룸이 줄줄이 있고, 공동 화장실과 공동 부엌, 공동 세탁기를 쓰는 조금은 기숙사를 닮은 다세대 빌딩의 단칸방. 부동산에서는 ‘원룸형 하숙’이라고 부르더라.

내가 사는 곳에는 복도 끝에 현관문이 있어. 거기서 신발을 챱챱 벗어서 대충 던..지면 아줌마한테 혼남.

문을 열면 어둑한 복도를 누르스름한 조명이 비추고 있어.

입구 쪽에 화장실과 정수기가 함께 있는데, 아무리 집주인이 헤이즐넛 방향제를 뿌려도 냄새가 안 없어져. 똥에서 헤이즐넛향 난다. 헤이즐넛향 똥. 작은 문 앞마다 각자의 실내화가 놓여 있어. 사람이 있다면 문 아래로는 가느다란 빛이 새어 나오지.

복도에서 퀴퀴한 냄새, 정말 장난 아니야. 거의 니 냄새 수준 ㅇㅇ. 나는 그 냄새를 피해 방문을 닫지. 그러면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모두의 것인 그 냄새에서 간신히 탈출할 수 있다.

그래도 세 평쯤 되는 방에 보증금 100만원, 월세 32만원이면 제법 싼 편이지. 나도 그것만 보고 1년 계약했어. 공동 부엌, 공동 화장실, 공동 세탁기가 불편하기야 하겠지만, 그건 기숙사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리고 뭐, 내가 솔직히 밥을 하면 얼마나 해 먹겠냐? 방이 좀 좁긴 해도 갑부도 아닌 처지에 뭔 드넓은 방이여. 침대와 책상만 들어간다면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 씨바.

처음엔 자취 생활에 대한 환상도 있었어. 하지만 그게 산산조각 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어. 네가 혹시나 나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미리 너의 환상을 부숴줄게. 과장은 없어. 정말 널 위해서 나누는 경험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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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라면 먹고 갈래?”인데 현실은 소음 배틀이야

솔직히 말해서 자취를 하기 전에 내가 갖고 있던 가장 큰 환상은… 여자친구를 나만의 공간으로 초대하는 거. (붕가붕가. 붕가붕가.ㅈ잭스 하고싶다…) 그 환상을 실현하기 위한 준비물에는 자취방과 여자친구가 있는데, 50% 이상은 도저히 갖춰 지지가 않더라. 아, 잠깐 눈물 좀 닦고.

하지만 내가 지금 여자친구가 있다고 해도 이 방에서는 미션 FAIL이다. 맞은편 방 아가씨를 보면 그 실상을 훤히 알 수 있지. 그 아가씨는 내가 상상했던 그 ‘페스티벌’을 혼자서 즐기고 있는데, 문제는 그걸 우리 건물 사람들이 다 ‘듣고’ 있다는 거다.

과제를 하느라 새벽에서야 이제 좀 잠들어볼까, 하면 맞은편 방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문제는 그 발소리는 척 들어도 분명히 2명 이상이라는 거다. (암수한몸…) 술에 취한 남녀라는 것도 다 알 수가 있지. 막 혀 꼬이고… 괜히 쳐웃고…. 그 때부터 이제 나는 완전 긴장하는 거지. 왜냐면… 곧 뜨거운 페스티벌의 생생한 사운드가 맞은편 내 방까지 전해지거든.

현실로 겪으면 욕 나온다.

내가 왜 남 붕가붕가하는 소리를 리얼 사운드로 들어야되냐? 예수님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 했다지만 네 이웃이 사랑하는 소리까지 듣고 싶진 않다. 까놓고 말해서 형 26년 모태솔로다 ㅎ후…. 게다가 그녀는 능력자 같더라. 거의 매달 남자가 휙휙 바뀌더랔ㅋㅋㅋㅋ ㅅㅂ.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고, 수업을 듣고, 과제며 팀플이며 하루 종일 쉴 틈도 없는데, 새벽에는 남의 신음 소리로 벽이 울려. 개 같다.

아 붕!!!가!!!!붕!!!!가!!!!!!

한 번은 아래층에서 한밤중에 갑자기 망치질 하는 소리가 들렸어. 일정하게 가구를 두드리는 듯한 쿵쿵쿵쿵… 하는 소리가 말야. 이게 대체 무슨 소린지 너무 어리둥절해서 내려가 봤더니, 아래층에서도 누군가가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더라고. 침대를 어찌나 흔들었으면 망치질 소리가 나냐? ㅍㅍㅅㅅ!!!! ㅍㅍㅅㅅ잼!!!!!!!!

방을찾는-1

더 끔찍했던 건, 아래층의 다른 방에서는 그 소리가 너무 싫었는지 시끄러운 헤비메탈 음악을 틀어 놓고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며 맞불을 놓고 있었다는 거야. 소음으로 소음을 덮기 위해 롸커가 되어 버린 그의 마음은 같은 ‘피해자’ 입장에서 십분 이해가 가지만, 처절한 소음 배틀을 벌이는 그 광경 자체는 제 3자가 봤을 때는 지옥도일 뿐이었지.

한 층에 최대한 많은 방을 구겨 넣으려고 했기 때문일까? 이토록 얇은 벽이 얄팍한 내 지갑과 내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나의 고요한 밤과 앞집 그녀의 프라이버시는 대체 얼마 짜리 방에서야 누릴 수 있는 호사일까?

여긴 눈 감으면 쌀 훔쳐가는 곳이란다

혹시 내가 아까 부엌 따윈 중요하지 않다고 했냐? 그럼 그 말 취소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년 삼시 세 끼를 모두 다 사 먹을 순 없잖아. 경제적인 이유도 있고, 건강 생각해도 그렇고. 그런데 공용이라는 것은 기본적인 신뢰가 있어야 가능하더라고. 얼굴도 이름도 잘 모르는 사람들, 한 달 뒤에 나갈지 1년 뒤에 나갈지 모르는 사람들끼리 신뢰는 개뿔이 있겠니.

절대 비싼 음료수를 공용 냉장고에 둬서는 안 돼. 한 개에 2천 원 정도 하는 에너지 드링크? 다음날이면 없을 걸. 사람들이 치사하게 바로 까서 없애버릴 수 있는 건 바로 바로 훔쳐 먹더라? 난 여기 살면서 정말 개인 냉장고의 절실함만 느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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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무슨 쥐새끼도 아니고 쌀도 훔쳐가더라. 쌀 봉지를 공용주방에 다 같이 모아 놓는데, 내 쌀 봉지가 순식간에 반이 비어 버린 거야. 솔직히 쌀을 가져갈 거라고는 진짜 상상을 초월하는 이웃 클라쓰여. 이거 뭐 지문 떠가며 과학수사 할 수도 없고 그냥 속만 탈 뿐이지. 계란 사 놓으면 야금야금 2개씩 없어지고… 그렇다고 좁은 방에 죄다 쌓아 둘 수도 없고. 진퇴양난이야.

개빡치는 건 내 냄비 쓰는 새끼들이야. 어느 날은 누군가가 내가 공용 주방에 가져다 놓은 냄비에 무슨 배춧국 같은 걸 잔뜩 만들어 놨더라고. 아니, 자기 게 아니면 다 주인이 있는 건데, 누가 안 본다고 그렇게 순식간에 이웃에서 도둑으로 변하나? 그리고 이왕 만들었으면 빨리 먹고 씻어 놓기라도 할 것이지. 만든 채로 썩기 직전까지 세월아 네월아 놔둬서 내가 그냥 확 치워버렸어.

이 방에서 살기 전까지는 밥이란 건 끼니만 대충 때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생각이 아예 바뀌었어.

사람은 제대로 된 걸 먹어야 제대로 된 생활이 가능해. 그런데 이 방에선 절대로 제대로 된 걸 먹을 수가 없어. 난관이 너무 많아. 이제는 누군가와 생활 속에서 뭔가를 공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져. 내 냉장고, 내 주방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은데… 그러면 월세가 많이 뛸 게 뻔해서 아직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너는 처음부터 싸고 개인 주방 있는 곳을 찾아 봐라. 쉽지는 않겠지만.

잠만 자는 방이라는 건 생활이 없는 방이라는 뜻이야.

솔직히 너에게 뭔가 힘들었던 에피소드를 전해 주고 싶었는데, 하나를 꼽기가 힘들다. 그냥 매일매일이 힘들었거든. ‘이런 방에서 왜 사나’ 싶을 수 있지만, 더 나은 방으로 가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나는 지금 더 많은 돈을 벌 여유가 부족해.

너도 알다시피 형은 PC방, 카페 등등에서 알바를 하고 있어. 시급은 5500원이고, 월 40시간 정도 일해도 22만원이야. 더 일하고 싶지만 학점에 영향을 주면 곤란하고, 게다가 학점만 챙겨서 취직이 되는 세상도 아니지. 토익 학원이다, 대외활동이다, 봉사활동이다, 지금도 하루가 너무 모자란다. 모자란 생활비는 다른 많은 친구들처럼 부모님께 지원 받고 있는데, 마음이 편치 않아. 과외를 구하면 시급 면에서 훨씬 낫겠지만 사교육 시장도 치열해서 문과 남자한테 돌아오는 과외가 없구나.

애초에 열심히 좀 살아보려고 잠만 잘 수 있는 방을 골랐어. 그랬더니 생활이라는 게 사라진 것 같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오면 11시. 복도 끝의 현관을 열고, 차가운 계단에 신발을 벗어 두고, 화장실 냄새와 퀴퀴한 냄새가 섞인 어두운 복도를 지나 내 방 문을 열면 시꺼먼 사각형의 공간을 마주하지. 나는 이 공간에서 눕는 것,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것, 웹 서핑, 과제 말고는 할 일이 없어. 그나마 유일한 위안은 가끔 시간 날 때 두드리는 게임 정도?

이렇게 살아도 미래는 불안하다. 사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그것인지도 몰라. 신해철이 마지막 방송 <속사정 쌀롱>에서 그랬지. 실낱 같은 희망이 보인다면 모를까, 한치 앞도 안 보이는 깜깜한 상태에서 ‘열심히 산다’는 건 그저 허공에 삽질 같아서 정말 죽을 맛이라고. 하루가 끝날 때 쯤에는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는 격려와 응원은 솔직히 그다지 와 닿지 않아.

형 이제 내년에 4학년 된다. 이 생활에서 탈출하기 위해 보다 본격적으로 ‘취직 준비’라는 발버둥을 쳐야겠지. 어떤 정치인은 청년이 눈높이를 낮추면 취직이 잘 된다고 하지만, 난 도저히 지금 이 정도의 생활수준으로 눈높이를 낮추지는 못하겠다. 이렇게 평생은 못 살겠어. 지금까지 원조해 주신 부모님께도 죄송하고. 나는 여기서 탈출할 동아줄을 기다리고 있어. 그것은 기적적으로 더 싸고 더 질 좋은 방이거나, 아니면 번듯한 취직 자리, 둘 중 하나일 것 같다.

다른 무언가를 상상하기엔, 그런 공상에 할애할 시간이 없어.

아직 자취를 시작하지도 않은 너를 너무 겁먹게 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게 내가 느낀 현실인 걸. 아무튼 내가 사는 이 원룸으로는 절대 오지 마라. 그리고 비슷한 구조의 다른 원룸도 웬만하면 피해봐. 이 방보다 더 저렴하고 더 좋은 방이 나오길 빌어주고 싶지만, 솔직히 그런 방이 있다면 나부터 옮길 것 같다. 쏘리. 아무튼 이 근처에 방 잡게 되면 앞으론 자주 보자.

너의 선배 정그래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