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기획하면 내가 개발한다”

안시형 (컴퓨터과학, 09학번)

<게임 디자인과 문화> 수업 종강 날, 다음 날에도 시험이 있다는 개발자 안시형씨를 납치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여기에 패널을 자처하며 부록처럼 딸려온 여정욱씨 외 다른 수강생들도 인터뷰에 함께 했다. 이윽고 인터뷰는 만담으로 변했고 만담은 뒤풀이 자리로 이어졌다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

반갑다. 우선 <게임 디자인과 문화>(이하 게디문)를 듣게 된 계기를 이야기 해 달라. 컴퓨터 공학과에서 온 걸 보니, 역시 목적은 양민학살인가.

원래도 게임을 되게 좋아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게임 관련해서 들을 수 있는 수업이 거의 이 과목밖에 없었다. 그래서 예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이번 학기에 복학하고 듣게 됐다.

이번 수업을 들으면서 조교님이랑 같이 일하게 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역시 갓시ㅎ…

조교님께 연락 받았다. 조혜경 조교님 남편분이 매주 토요일마다 진행하던 유니티 워크샵을 들었는데, 그 때 좋게 봐주신 것 같다. 그리고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정욱씨 등이 나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해 주셨다고 들었다. 일단 나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으니까 흔쾌히 수락했다. 같이 게임뿐만 아니라 미디어 아트 쪽까지 아우르는 작업을 하게 될 것 같다. 정말로 좋은 기회를 잡은 것 같아서 기쁘다.

그럼 고정 질문 좀 하겠다. 본인은 겜덕인가?

게임은 초등학교 때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를 시작해서, 진지하게 프로게이머 지망생으로 중학교때까지 스타만 팠었다. 중학교 때 대회에 나가서 지역 우승을 했던 적도 있다.

그리고 나서는 그냥 꾸준히 게임을 즐기는 편이다. 사이버 연고전도 스타크래프트 학교 대표로 나갔었다. 1학년 때는 졌는데, 2학년 때는 이겼다(웃음).

수업에서 주로 ‘갓시형’이라 불리며 개발자 하드캐리를 했다.

일단은 내가 잘하는 게 프로그래밍이라서 그랬다.

기획이나 디자인 쪽도 손대면서 삼위일체 완성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도 있던데.

원래 기획이나 디자인 쪽도 관심이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게임을 좋아하다 보니까 다른 분들이 기획이나 디자인을 하면 피드백을 하는 정도지, 나보고 디자인 좀 해보라고 하면 절대 못한다. 기획도 막상 해보라고 하면 되게 어렵더라.

(옆에서 인터뷰를 지켜보던) 정욱: 시형씨는 피드백이 매우 활발한 프로그래머라 같이 일하기 참 좋았다. 보통 프로그래머나 디자이너들에게 기획을 하고 의견을 전달하면 그냥 이거 어떻게 하고, 저거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는 수준인데 시형씨는 본인이 봤을 때 이상한 것도 이야기해 주고, 더 좋은 아이디어도 낸다. 머리가 있는 프로그래머 느낌?

정욱씨가 이야기한 게 내가 추구하는 개발자의 상이랑 비슷한 거 같다. 나는 게임 만드는 걸배우고 싶어서 전기전자에서 컴공으로 전과를 했는데, 전공에서는 프로그래밍적인 역량 자체만 계속 배우게 되고 이를 위해서 매우 기초적이고 게임과는 상관 없는 지식들도 배워야 한다.

진지하게 개발자를 지망한다면, 그 외에도 스스로를 차별화 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저런 게임과 관련된 활동을 하면서 프로그래머로서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그런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게디문 수업을 더 열심히 들은 것 같기도 하다.

개발자에게도 소통 능력은 중요합니다
개발자에게도 소통 능력은 중요합니다

게디문 수업에서 실제로 게임을 만들어 보니 어떻던가.

사실 게임을 만든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전에 프로그래밍 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거기서는 아예 프로그래밍 쪽만 가르쳐 준다. 그런데 가끔씩 학원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오라고 과제를 내 주는 경우가 있다. 그 때는 내가 혼자 기획도 하고, 이미지도 구해야 했다.

그런데 게디문에서는 다른 분들께서 기획도 다 해주시고 디자인 다 해주시고, 나는 만들기만 하면 되더라.

그런데, 여럿이서 같이 게임을 만드는 건 혼자 하는 거랑은 많은 차이가 있더라. 첫 번째 유니티게임 프로젝트를 했을 때, “기획자께서 원하시는 부분은 전부 구현할 수 있으니 맘 편하게 기획을 해 달라(일동: 크… 갓시형…)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안 되고(…), 변수를 조절해야 하는데 변수를 조절하면 게임 전체의 기획이 틀어지거나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언제나 생각한대로 되지 않죠
언제나 생각한대로 되지 않죠

게임 제작에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꼽는다면?

(곰곰이 생각 후) 3차 프로젝트가 시험 기간이라서 조금 힘들었던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워낙 세 번째 팀의 팀원들이 좋아서 이 기회를 날리기 싫었다. 그래서 작정하고 열심히 하는 대신 시험 한 두 개는 날린 것 같다.

그러면 이번 수업의 프로젝트 중에서는 3차 프로젝트가 가장 기억에 남나?

그렇다. 그 프로젝트는 일본 밴드 ‘범프 오브 치킨’의 ‘K’라는 노래를 모티브로 삼아서 만든 아케이드 퍼즐 게임이다.

프로젝트 3 당시 같은 조였던 정욱: 원래 <메뚜기 디펜스>라고, 간단한 디펜스 게임을 만들려고 했었다. 그런데 ‘너무 대충 하는 것 아니냐’는 뉘앙스의 피드백을 받고, 아케이드로 장르를 바꾼 후에, 짜내다가 나온 거다. 젊은 화가와 검은 고양이의 이야기다.

솔직히 처음에 아케이드라고 할 때 감이 안 왔는데, 스토리를 듣고 나니까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도 <메뚜기 디펜스>도 만들고 싶긴 한데…

정욱 : 시험도 얼추 끝났으니, 한나를 갈아 넣어서 메뚜기도 다섯 종류로 그리고, 스프라이트도 그리고, 스킬 이펙트 모션이랑 다 그려서…

아 왜요 종강했는데 왜요
아 왜요 종강했는데 왜요

사람 그만 갈아 넣어라. 인터뷰로 돌아 오자. 게디문을 들으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사람. 그 전까진 게임을 좋아하고 게임 쪽으로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하더라도 그런 이야기를나눌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이 수업에는 정말 많다. 또, 조교님도 만나고, 좋은 일할 기회도 잡았다.

다시 말하면 겜덕질을 하는 동료들을 만나서 좋다는 뜻인가.

나는 덕후는 아니다. 나는 약간 한 게임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라서, 그거를 하나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다. 애초에 덕후의 기준이 매우 다양하지 않나. 겜덕은 이것 저것 많이 해보는데, 나는 그렇지는 않다.

그럼 님은 스덕(…).

특정 게임에 대한 덕후라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럼 반대로, 게디문을 들으면서 잃은 것이 있다면?

게임을 만드는 일은 워낙 하고 싶었던 거여서, 게디문 수업을 다른 수업에 비해서 지나치게 열심히 들었다. 그래서 다른 두 과목 정도의 학점이 날아간 것 같은데… 그래도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너무 많다.

한 학기 동안 들으면서 느낀 소감?

음… 약간 정체성을 찾았다고 해야 하나? 나의 길은 이거다? 그 길을 찾은 것 같다. 공대에만 있다 보면 느끼지 못한 것들을 여기선 느낄 수 있었다. 공대에서는 늘 강조하는 게, ‘코딩만 하지 말고, 써먹을 줄 알아야 한다’는 건데, 이 수업을 들으면서 ‘써먹는’ 걸 해 본 것 같다.
또,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 함께 일하는 게 너무 즐거웠고, 앞으로도 좋아하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