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무엇을 잘 하는 지 모르겠다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그는 학기를 마친 후 그 이름도 찬란한 ‘올 인 원’이 됐다. 게임 디자인과 문화 수업을 듣기 전까지 코딩 한 줄 해 본 적 없는 여정욱씨 이야기다. 입기획에서 만능 개발자로 진화한 그를 만나 봤다.
같은 과에 학점이 매우 좋지 않은 친구가 있다. 얼마나 안 좋냐면, 평량평균이 3점이 안 된다. 그런데 걔가 게디문에서 A+을 받았다고 해서 ‘이거다!’ 싶었던 거지.
영 아닌 것 같다.
게임을 어느 정도 해야 겜덕인가?
그냥 게임은 적당히 좋아한다. 일에 우선 순위가 있어서 일단 게임보다 바쁜 일이 있으면 안 하고, 조모임 없을 때는 미친듯이 한다. 단 게임에 돈 쓸 때는 별로 신경 안 쓴다. 쓰고 싶으면 쓰는 거지. 골프 치는 사람들이 골프채에 몇 백만 원 쓰듯이, 본인의 취미생활에 투자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태어나서 가장 오래 한 게임은 <워크래프트 3>의 카오스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시작해서 대학 들어올 때까지 했으니까.
이것저것? 디자인은 입으로 했지만 기획과 개발은 손발 다 써서 했다. 주로 디자이너들을 괴롭히기는 했다.
첫 번째 유니티 게임 프로젝트 당시 다른 조에는 코딩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한 명씩은 있었는데 우리 조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조모임을 할 때 기획 과정에서도 열심히 의견을 표출하고 디자이너들이 캐릭터나 스프라이트 찍을 때도 옆에서 열심히 참견하긴 했는데, 프로젝트에 뭔가 실질적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개발자가 없다 보니 집에서 인터넷 찾아 보고 책 사서 보면서 개발자 역할을 맡게 됐다.
주로 책에 있는 예제들을 따라서 만들어보고, 개인 과제 할 때에도 여러가지 실험을 해 봤다. 조모임때 필요할 것 같은 코드들은 미리 찾아서 개인 과제에 스크립팅하는 식이었다.
하드캐리는 무슨… 그냥 한 것 뿐이다. ‘광고의 이해’ 수업에서 FedEx 광고를 게임으로 만들어서 발표했다. 개인과제에서 썼던 코드들을 많이 재활용하고 플래피 버드 등의 코드도 활용해서 <던져진 페덱스 박스>라는 게임을 만들었다.
FedEx의 직원들이 트럭에 택배 물품을 던지던 것이 보도된 사건에 대해 대표가 ‘용납할 수 없는(unacceptable) 사건’이라고 말한 것에서 제목을 따 왔다. 이 게임에서는 직접 만든 캐릭터도 등장한다.
내가 디자인을 못한다는 점? 내 머리속에 있는 그림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면 절대 그대로 나오지 않더라. 물론 다른 디자이너들이 잘해 주었지만, 잘한다 못하다의 문제가 아니라 정확한 내 생각과 다르다는 그런 말이다. 그래서 방학 때 그래픽을 배우려고 학원도 등록했다.
뭔가 이전에는 자기소개서에 특기나 취미를 쓸 거리가 없었는데, 이제는 뭔가 쓸 거리가 생긴 점?
그렇다.
일단 밤낮이 바뀌었다. 조모임이 한창이던 3주 동안은 하루 평균 두 시간씩 잔 것 같다… 3주를 그렇게 사니까 자는 시간이 이상해졌다. 언제는 낮에 졸리고 언제는 새벽에 졸리고…
역시 대학 수업은 팀원을 잘 만나야 한다는 걸 느꼈다. 이번 학기에 들었던 다른 수업의 경우에는 -물론 무슨 수업인지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대학 생활 내내 겪었던 조모임 중 가장 하드코어했다. 반면 게디문은 조원들을 잘 만나서 좋았다.